떡 돌려요.

1.
인용으로 점철된 책을 만났어.
이전에 그 책을 접한 누군가는 밑줄긋기의 대가였어. 단순 밑줄, 물결밑줄, 사선, 꺽쇠, 별표까지.
하얀 종이 위에 붉은 펜으로 혈색을 더해주었더라구. 냉담하기만한 나 같은 독자는 이룰 수 없는 성취야. 

그 책의 저자 또한 밑줄긋기의 대가였을거라고 감히 짐작해. 베개로 쓰면 묵 건강에 위협을 줄만큼 두툼한 책들에서 기가막히게 한줄씩 뽑아내서 자신의 책에 풀칠해 내었지 뭐야. 꼴라주 기법은 이렇게도 쓰였어.

이만큼의 전문서적을 다독할만큼 지적 열망이 강하였다는 그의 고백은 절실하게 다가왔지만, 
잔뜩 힘준 그의 글은 감흥없이 너무나 빤해 보여서, 읽는데 힘빠지더라.

2.
냉담한 독자놀이는 이제 그만. 빌려 읽던 책을 덮고, 이사를 왔어.
나는 이 곳에서 너무나 빤한 이야기를 늘여뜨려 놓을거야.
순전히 내가 하고자 하는 빤한 이야기를 위해서, 너와 나의 이야기를 곡해하여 던져놓을 용의도 있어.

와 이것봐. 첫글부터 저런 무서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어.
첫글이 싸나우면, 앞으로 뭘 해도 이전보다 순해보이지 않을까 하는 노림수가 여기 있어.
순한 맛이 좋아. 그래야 속이 안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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